2026년 11월 다섯째 주일 대표기도문

11월 다섯째주 대표기도문
시간과 역사를 주관하시며 약속하신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 아버지, 11월의 마지막 주일이자 대림절 첫째 주일에 주님의 백성을 예배로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무는 가을과 시작되는 대림의 계절을 지나며, 우리의 날들이 주님의 손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어둠 속에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다시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주님을 믿음으로 기다리게 하옵소서.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우리 가운데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복음의 신비를 깊이 바라봅니다. 높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의 시간과 눈물과 고통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주님은 멀리서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시고 낮은 자리에서 가난한 이와 병든 이, 죄인과 슬퍼하는 이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성육신의 은혜를 그저 성탄의 아름다운 이야기로만 여기지 않게 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능력으로 믿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는 자기 자리를 지키려 하고 다른 이의 짐을 함께 지는 일에는 인색했습니다. 높아지려는 마음으로 이웃을 판단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했으며,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긍휼을 삶으로 나타내지 못했습니다. 우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신을 낮추어 종의 형체를 입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새롭게 하옵소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어 겸손과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시고, 받은 은혜를 이웃에게 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대림절을 보내며 오신 주님과 다시 오실 주님을 함께 바라봅니다.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 속에 이루어졌고,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음을 믿습니다. 아직 세상에는 전쟁과 불의와 눈물이 남아 있지만, 주님의 나라가 완성될 날을 소망합니다. 기다림이 수동적인 시간이 되지 않게 하시고, 깨어 기도하며 정의를 행하고 자비를 베풀며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한 해의 사역을 돌아보며 각 기관의 총회를 준비하거나 마치는 교회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총회 가운데 서로의 수고를 감사히 여기게 하시고, 다음 해를 섬길 임원들을 주님의 뜻 안에서 세워 주옵소서. 새롭게 직분을 맡은 이들에게 지혜와 충성을 더하시며, 직분을 권세나 명예로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자리로 받게 하옵소서. 임기를 마치는 이들의 헌신도 기억해 주시고, 기관마다 사람의 뜻보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의 뜻을 구하게 하옵소서. 의견이 다를 때에는 사랑으로 대화하고, 함께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여 교회를 든든히 세우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를 성육신의 사랑을 드러내는 공동체로 세워 주옵소서. 말씀을 맡은 목회자와 교역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더하시고, 모든 성도가 각자의 은사로 기쁨 가운데 섬기게 하옵소서. 병상에서 회복을 기다리는 이들, 경제적 어려움과 외로움으로 지친 이들, 가정의 갈등으로 눈물 흘리는 이들을 위로하여 주옵소서. 추운 계절을 앞두고 홀로 사는 어르신과 돌봄이 필요한 이웃을 교회가 살피게 하시며, 우리의 기도가 따뜻한 손길과 구체적인 나눔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대한민국과 세계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지도자들에게 정직과 책임을 주시고, 약한 이들의 생명과 존엄이 보호받게 하옵소서. 전쟁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평화와 회복의 길을 열어 주시며, 교회가 민족과 경계를 넘어 그리스도의 화해를 전하게 하옵소서.
오늘 드리는 예배를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선포되는 말씀으로 우리를 깨우시고, 찬양과 기도 가운데 주님의 임재를 누리게 하옵소서. 한 해의 마지막 달을 주님과 동행하며,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탄절과 성육신,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오셨습니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거리에 불빛이 켜집니다. 가게마다 성탄을 알리는 장식이 놓이고, 사람들은 한 해의 끝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 불빛 아래에서 성탄의 이야기를 다시 들으면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한 아기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이 놀라운 사건을 우리는 성육신이라고 부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요한복음의 이 짧은 문장에는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셨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로 오신 하나님
우리가 기다리는 구원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강한 힘으로 세상을 단번에 바꾸고, 모든 사람이 알아볼 수 있는 영광 가운데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곳에는 세상이 중요하게 여기는 화려함이 없었습니다. 아기를 돌보는 부모의 손길과 그 곁을 지키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은 자리에 오셨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줍니다. 세상에서 크고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도, 남들이 알아주는 성취가 없어도, 주님 앞에서 우리의 삶은 결코 하찮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자리로 오셔서 그곳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아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사람이 되신 척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참사람이 되셔서 어린아이로 자라셨고, 배고픔과 피곤함을 겪으셨습니다. 사람들의 기쁨에 함께하셨고, 사랑하는 이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외롭고 지칠 때 찾아가는 예수님은 인간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며,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우리와 모든 면에서 같으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사람이시고,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습니다(히 4:15). 그분은 죄로 흔들리는 우리를 이해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주이십니다.
구유에서 십자가로
성탄의 구유는 십자가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따뜻한 이야기를 남기시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베들레헴에 누이셨던 아기는 자라나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성탄절의 기쁨이 깊은 이유는 아기의 탄생 자체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아기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여신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멀리서 돌아오라고 말씀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성탄은 우리가 하나님께 올라간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의 성탄
성탄절이 다가와도 모든 사람의 마음이 밝은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고, 한 해를 돌아보며 이루지 못한 일들 때문에 마음이 무거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성탄은 기쁨을 억지로 만들어 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슬픔과 기다림이 있는 자리에도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는 소식을 들려줍니다. “임마누엘”, 곧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약속입니다(마 1:23).
이번 성탄에는 잠시 걸음을 늦추어 보았으면 합니다. 화려한 장식 너머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혼자 겨울을 지나는 이웃에게 따뜻한 안부를 전하면 좋겠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않으셨다는 소식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시간 속으로 오셨기에, 우리는 오늘도 외롭고 연약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셨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