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는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는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에게 신앙을 이야기하다가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말이 단호할수록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데 대화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함께 예배드리기를 바라지만 교회 이야기만 꺼내도 서로의 표정이 굳어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강하게 설득해야 할까요? 아니면 신앙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않는 것이 좋을까요?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합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온유와 존중으로 행하라고 가르칩니다(벧전 3:15). 복음의 진리를 붙드는 일과 상대방을 사랑하며 대하는 일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 하나님은 없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말을 너무 빨리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다”거나 “마음이 완고해서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지나온 삶과 질문이 다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실제로 계신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고통과 불의를 보면서 선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교회에서 받은 상처가 있습니다. 믿었던 신앙인의 말과 행동에 실망하여 교회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까지 멀리하게 되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오랫동안 품었던 기도가 무너진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불신앙을 상처나 오해 때문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죄로 인해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자기 뜻을 앞세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대방의 모든 사정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아시지만, 우리는 먼저 듣고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질문을 두려워하지 말고 들어 주십시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곧바로 정답을 말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낍니다. 대답이 막히면 신앙이 흔들리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하면 대화는 거기서 멈출 수 있습니다. 질문에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뿐 아니라 오래된 슬픔이나 실망이 담겨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내 가족은 그렇게 고통스러웠을까?”라고 묻는 사람에게 당장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려 들기보다,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을 먼저 들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고통의 이유를 알고 있지 않습니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해도 됩니다. 함께 생각하고, 성경을 살펴보고, 필요한 자료를 찾아보자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믿음은 어려운 질문을 피하는 데서 자라기보다, 그 질문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는 가운데 깊어집니다.
신앙인의 잘못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교회의 모습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을 말하면서 이웃을 함부로 대하거나, 정직을 가르치면서 자신의 잘못은 감추는 신앙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교회를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잘못된 일이 있었다면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다”는 말로 서둘러 덮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의 죄가 곧 하나님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잘못이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복음을 듣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한 일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상대방이 다시 교회를 찾지 않더라도 그 아픔을 존중해야 합니다. 회개는 교회를 지키기 위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복음은 논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근거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창조 세계의 질서와 인간의 양심, 성경이 전하는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관해 대화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질문을 성실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믿는 이유를 설명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대화가 상대방을 이기는 논쟁으로 바뀌면 마음의 문이 닫히기 쉽습니다. 말로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자신이 가진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권면합니다(벧전 3:15). 진리를 분명하게 말하는 것과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는 함께 가야 합니다.
“당신은 왜 그것도 모르나요?”라고 묻기보다, “저는 이 말씀에서 이런 위로를 받았습니다”라고 자신의 믿음을 나눌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당장 동의하지 않더라도 관계를 소중히 여길 수 있습니다.
믿음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배우자가 배우자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할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 뜻대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열어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적절한 기회에 복음을 나누고, 상대방이 질문할 때 성실하게 대답하며, 그의 삶에 진실한 이웃으로 함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강요하거나 두려움을 이용하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모든 대화를 전도의 기회로 만들기보다, 함께 식사하고 안부를 묻고 일상의 기쁨과 걱정을 나누는 관계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불신자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소중한 이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대할 때 그를 오직 “전도해야 할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지으신 소중한 사람입니다.
그에게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오랫동안 품어 온 꿈과 상처가 있습니다. 기뻐하는 일이 있고 남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걱정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의 삶과 생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 사랑은 상대방이 교회에 나오겠다고 약속할 때만 베푸는 친절이 아닙니다. 도움을 받고도 내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을 거두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이 아플 때 안부를 묻고, 힘든 일을 겪을 때 곁에 있어 주십시오. 신앙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날에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날에도 진실한 관계를 이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며 오래 기다리는 사랑
가족이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지 않을 때 “내가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그런가?” 하고 자신을 탓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저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라며 마음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의 구원을 책임지고 이루어 내는 존재가 아닙니다. 복음을 전할 책임은 있지만, 그 사람의 마음에 일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간구하며 사랑으로 곁에 있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도 “빨리 교회에 나오게 해 주세요”라는 바람뿐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위해 구하면 좋겠습니다. 건강과 일터, 관계의 어려움과 마음의 상처를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여기시는 것처럼 우리도 한 사람의 삶을 소중히 바라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또한 상대방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 안에도 교만과 불순종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불신앙을 지적하기 전에, 우리 자신도 날마다 그리스도의 용서가 필요한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이웃으로 살아가기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을 사랑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가 전할 가장 소중한 이야기는 상대방이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무엇을 이루셨는가입니다. 그 복음을 전하면서도 우리는 상대방의 질문을 듣고, 아픔을 존중하며, 이웃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대화를 서둘러 끝내거나 억지로 결론을 내리려 하지 마십시오. 그가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들어 보고, 함께할 수 있는 일상의 자리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적절한 때에 자신이 믿는 복음을 온유하게 전하고, 그 이후의 길은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게 됩니다. 그 사람의 삶을 존중하며 오래 기도하고,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