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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강해

προφήτης 2022. 6. 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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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장 강해

창세기 2장 강해

창세기 2장은 안식에 대한 내용과 아담이 동물의 이름을 짓는 사역, 그리고 여성의 창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2장은 별겨의 장이 아닌 1장의 연장이자 1장에서 다 언급하지 못한 여성의 창조에 대해 내러티브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1-3절 안식일

1절의 천지는 1:1의 천지를 그대로 가져와 처음 의도한 것이 완벽하게 실현되었음을 말합니다. '만물'을 더함으로 천지 안에 만물로 채워졌음을 말합니다. 즉 공허에서 충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6일간의 창조는 공허에서 충만으로 나아갑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부족합니다. 진정한 창조의 완성은 7일에 있습니다. 7일째 되는 날 하나님은 안식하심으로 창조를 완성하십니다.

 

다 이루어지니라

'다 이루어지니라'를 통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를 생각 나게 합니다.

  •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는 끝났다는 말이 아니라 완성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제 완성된 창조는 아담과 하와를 통하여 보존되고 계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따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복되게 하사

성경에서 복되게 하시는 특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구별하여 선택한다는 의미와 원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3절에서 복과 거룩이 겹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은 7일의 거룩함을 통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7일은 지금까지 6일과의 구분이자 구별입니다. 빛과 어둠이 나뉘는 것처럼 6일과 7일째가 나뉨으로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7일의 구분은 6일의 무의 함이 아니라 6일의 목적과 의도가 7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4-14절 에덴 동산

내력은 이러하니

내력은 히브리어 톨레돗인데 족보로 번역된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왜 여기에 사용되었는지 의아합니다. 아마도 에덴동산의 역사를 살피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초기의 천지는 비가 내리지 않고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으므로 초목이 없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문장은 천지는 사람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는 전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땅이 창조되고 사람이 후에 진화된 것이 아니라 땅의 목적 자체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생기를 그 코에

사람의 창조에 대한 서술입니다. 1장에서 다루지 못한 사람의 창조를 더합니다. 그렇다면 2장은 6일째의 창조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인간 창조에 대해 설명이 더 필요할까요? 왜 사람만을 더 세밀하게 표현할까요?  성경의 의도를 모두 알 수  없으나 유독 '생기'라는 단어에 주목이 갑니다. 코에 생기를 넣음으로 사람이 된 것입니다. 후에 노아의 홍수 때 코로 호흡하는 모든 존재는 죽게 됩니다.

 

거기 두시고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거기에 두십니다. 그런데 에덴 동산은 '동방'입니다. 앞으로 동방은 이방인을 대표하는 방향이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사람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사역할 장소입니다.  에덴 동산에 사람을 두심으로 그곳에서 보존하고 계발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소명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소명의 현장입니다.

 

강이 에덴에서 흘러나와

에덴 동산은 하나님의 보좌와 같습니다. 에스겔 성전과 요한계시록의 하나님 보좌에서 강이 흘러나옵니다. 창세기는 대단히 상징적인 책으로 앞으로 일어날 역사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타락 이후 되돌아갈 천국의 상징적인 장소입니다. 물론 요한계시록은 에덴동산이 아니라 도시(예루살렘 성)가 임한다고 말합니다.

흘러나온 생수는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하며, 그로 인해 수많은 생물이 살아갑니다.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하나님의 임재로 인한 결과가 생명임을 말합니다. 네 개의 강은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입니다.

 

15-17절 계명을 주시는 하나님

15-17절은 에덴동산의 범주 안에 넣어야 하지만 중요하기 때문에 따로 구분했습니다. 에덴동산을 지키는 일은 계명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에덴 동산을 지키는 자격에 대한 것입니다. 아쉽게 인간들은 자격을 박탈당하고 추방당합니다.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경작은 아바드(עָבַד)로 섬기다는 뜻이고, 지키다는 샤마르(שָׁמַר)로 영어로 Keep에 해당하는 말로 보존하다는 뜻입니다. 경작은 기존의 것을 더 개발하는 것이며, 보존은 말 그대로 보존하는 것입니다. 아담은 에덴동산을 개발하고 지키는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더 발전 시키야할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경작과 보존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계명에 순종할 때입니다. 아바드와 샤마르는 고대근동 지역에서 신을 섬길 때 사용하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을 지키고 경작하는 것이 신적 행위임을 말합니다.

 

먹지 말라

하나님은 아담(사람으로 표현함)에게 계명을 주십니다. 계명은 계명을 주시는 하나님과 계명에 순종해야 하는 인간의 질적 차이를 보여줍니다. 계명은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본문과 정체성을 인지하는 가늠대입니다. 계명을 통해 하나님은 계명을 주시는 분이시고, 사람은 그 계명에 순종해야 하는 존재임을 일깨웁니다. 계명을 오직 사람에게 주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계명은 시험인 동시에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계명을 주지 않으면 명령을 어길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쉽게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특권을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불순종했습니다.

 

 

18-25절 여자의 창조

돕는 배필

여성에 위치에 대한 많은 논란이 아직도 있습니다. 하여튼 시작은 이곳입니다. 과연 돕는 배필이 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먼저 돕는다는 것은 문맥상 아담이 하는 일에 대한 보조역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주도권은 남성인 아담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돕지 않으면 그 사명을 완수할 수 없거나 어렵기에 누군가 도와야 합니다. 그 도움을 주는 사람이 바로 여성입니다. 하나님은 여성을 아담을 돕는 자로 세운 것입니다. 이것이 여성의 목적이자 창조의 의도입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주도권이 없을까요? 돕는 배필에만 집중하지 말고 24절 '한 몸'을 먼저 전제하고 읽어야 합니다. 즉 돕는다고 해서 서열이 있거나 차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돕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일부의 학자나 사람들은 '돕다'의 '에제르'(עֵזֶר)라는 히브리에 집착합니다. 물론 중요한 단어이긴 하지만 여성의 위치를 밝히는 데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돕는다는 뜻입니다.(에제르에 대한 용례는 문서 하단 '에제르 용례'를 참고하십시오.) 돕는 배필이란 단어를 통해 아담만으로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명령한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남성과 여성이 만나 한 몸을 이룸으로 온전하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동물들을 데리고 오십니다. 그들이 스스로 온 것이 아닙니다. 아담은 동물을 보고 이름을 지어 줍니다.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부르면 '이름'이 됩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 만물을 부르심으로 이름이 된 것과 같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을 부여받은 것입니다.

 

에제르 용례

2:18, 2:20, 18:4, 33:7, 시 20:2

  • 출 18:4 하나의 이름은 엘리에셀이라 이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
  • 신 33:7 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의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의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가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 시 20:2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

 


 

창세기 장별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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