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

생명의 삶 큐티, 민수기 32 : 28~42

προφήτης 2025. 6. 4.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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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경계를 세우며 사는 사람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함께 모일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지경을 넓히실 때, 그 뜻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우리의 믿음을 증명합니다. 민수기 32장 28절부터 42절까지는 요단강 동편의 땅을 기업으로 받은 르우벤과 갓 자손, 므낫세 반 지파가 그 땅을 어떻게 수용하고 정착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땅의 분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사람들의 태도, 신앙의 실천,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 깊이 녹아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함께 살피며, 우리도 믿음의 경계를 세우는 사람으로 부름 받았음을 깨닫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순종은 결단으로, 결단은 기록으로

본문을 읽어 봅시다. 28절에서 30절까지는 모세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 그리고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에게 명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이미 요단 동편에 머물고 싶다고 고백했고,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제 모세는 그 약속을 ‘명령’으로 구체화하고, 엘르아살 제사장과 여호수아, 족장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포합니다.

“모세가 그들에 대하여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에게 명령하니라” (민수기 32:28)

여기서 우리가 먼저 주목할 점은, 신앙의 결단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명확하게 선포되고 기록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믿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결단이고, 그 결단은 반드시 공동체 안에서 확인받고 책임져야 할 약속입니다.

히브리어 ‘명령하다’는 말은 ‘צִוָּה’(tsavah)인데, 이는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은 선지자나 지도자가 백성에게 하나님을 대신해 내리는 신성한 명령을 의미합니다. 모세는 단순히 중재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서 이 명령을 선포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결단도 이와 같습니다. 예배 시간의 결단이든, 기도의 자리에서 내린 서약이든,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포된 것이며, 공동체와 함께 짊어져야 할 무게 있는 약속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죠.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마태복음 5:37). 신앙의 말은 헛되지 않아야 합니다.

정착은 곧 헌신의 실현

본문 33절 이후로는 실제로 그들이 받은 땅의 경계를 설명합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왕국 일부를 기업으로 받습니다. 므낫세 반 지파는 바산 지역까지 포함한 더욱 넓은 지역을 얻습니다. 이들의 이름과 정복한 성읍들이 길게 나열됩니다. 처음 보면 단조로운 지명 나열 같지만, 사실 이 기록은 매우 중요합니다.

“갓 자손은 디본과 아다롯과 아로엘과 아다롯소반과 야셀과 욕브하와 벧니므라와 벧하란들의 견고한 성읍들을 건축하고 양 무리를 위하여 우리간들을 세웠으며” (민수기 32:34-36)

이 구절들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약속한 바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건축하다’(히브리어: בָּנָה, banah)라는 말은 단지 건물을 짓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는 질서와 목적을 따라 공간을 마련한다는 의미를 지니며,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거처를 마련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즉, 이들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땅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아래에서 자기들의 삶의 터전을 정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곳에 가족을 두되 우리는 전쟁터로 나가겠다’는 그들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허락된 땅을 감사로 받아 정착하고, 공동체 안에서 약속한 삶을 실현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 우리가 말씀 안에서 결단한 것들은 반드시 삶으로 실현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기도와 결단이 있더라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 안에서 구체적인 헌신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결단은 아직 신앙이 아닙니다.

믿음은 건축입니다. 말씀의 기초 위에, 기도의 벽돌로, 순종의 지붕으로 올리는 인생의 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착’하는 것은 단순히 어디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뜻에 헌신하며 살아가는 삶의 구조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이름을 남기는 신앙, 믿음의 흔적

본문 후반부로 가면 각 지파가 차지한 성읍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르우벤 자손은 헤스본과 엘르알레와 기랴다임과 느보와 바알므온과 시브마를 건축하고 건축한 성읍들의 이름을 바꾸었으며” (민수기 32:37-38).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단지 성읍을 건축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바꾸었다’는 표현입니다.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닙니다. 고대 근동 문화에서 ‘이름’은 존재의 본질과 목적, 소속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방의 땅이 이제 하나님의 백성의 땅으로 바뀌었고, 새로운 목적과 신앙의 정체성으로 그 땅을 다시 명명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이름을 남기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에서 믿음의 흔적을 새기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공간 안에만 신앙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다니는 모든 땅에, 우리의 직장과 가정과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가 그곳에 이름을 남길 때, 그것은 단지 인간의 흔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기념비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2절에서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자신의 새 이름을 그의 이마에 기록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을 새기고, 또 그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는 자입니다.

분할된 지파, 그러나 하나된 사명

여기서 흥미로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요셉의 아들 므낫세 지파가 둘로 나뉘어 ‘반 지파’만 요단 동편을 차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장차 이스라엘 공동체가 경험하게 될 분열과 위기의 예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을 ‘반 지파’라 부르면서도 결코 분리된 백성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는 지리적으로 나뉠 수 있어도, 사명과 신앙의 중심에서는 하나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이죠. 교회가 서로 다른 지역, 다른 문화, 심지어 전통 속에 있을지라도, 그 중심에 하나님의 언약과 말씀,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연합이 있다면, 우리는 동일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에베소서 4장 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신앙 공동체의 일치는 땅의 위치나 전통의 동일성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반응과 언약에 대한 순종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민수기 32장 28절부터 42절까지는 단지 땅을 정복하고 나누는 행정적 기록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 앞에서 결단한 자들이 그 결단을 구체적인 삶으로 실현해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신앙이 말이 아닌 삶으로 증명된다는 가장 본질적인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의 경계를 세우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대로, 그 약속을 책임지고 실현해가는 사람들입니까? 말씀 앞에서 한 결단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실체를 가지고 나타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땅을 주십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삶의 영역이기도 하며, 또 한편으로는 사명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를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 다시 세우고, 그 안에 믿음의 구조물을 올려가는 일이 바로 우리의 헌신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함께 고백합시다. “주님, 저의 삶에 이름을 남기게 하소서. 주의 뜻에 따라 경계를 세우고, 믿음의 흔적으로 그 땅을 채우게 하소서.”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도 생명책에 분명히 기록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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