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삶 큐티, 민수기 32 : 1~15
광야 끝자락에서 드러난 믿음의 민낯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거칠고 메마른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내면 깊숙이 감추어진 믿음의 상태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민수기 32장 1절부터 15절까지의 말씀은 단순한 땅 분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공동체적 순종과, 거기서 비롯되는 책임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주는 장입니다.
요단 동편에서의 선택과 시험
민수기 32장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모세에게 요청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들은 길르앗 땅이 가축을 기르기에 좋다는 이유로, 그 땅을 기업으로 달라고 말합니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 떼를 가졌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 곳은 목축할 만한 장소인지라” (민수기 32:1).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땅의 요청 같지만, 이 선택의 이면에는 신앙의 시험이 숨어 있습니다. 요단 동편은 약속의 땅이 아니라 경계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은 요단 서편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그 약속의 중심이 아닌 경계에서 머무르려 합니다. 왜일까요? 자기들의 필요와 현실적 유익을 기준으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가축'을 뜻하는 단어는 ‘미크네’인데, 이는 본래 ‘소유하다’, ‘얻다’라는 뜻의 동사 ‘카나’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즉, 이들은 단순히 가축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의 삶의 기준이 '얻는 것'과 '소유하는 것'에 맞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 중심이 하나님이 아닌 물질과 유익으로 기울어진 것이죠.
이들의 요청은 광야 40년의 훈련을 무색하게 만드는 결정이었고, 모세는 그들의 요구를 들었을 때 분노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마음을 돌이켜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가는 것을 싫어하게 하려느냐” (민수기 32:7). 이는 단순히 두 지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반복되는 불신
모세는 이 사건을 과거 가데스바네아에서의 불신앙 사건과 연결시킵니다. “너희 조상들도 내가 가데스바네아에서 그 땅을 보라고 보냈을 때에 그리 하였나니” (민수기 32:8). 그때도 이스라엘은 정탐꾼들의 보고를 듣고 두려워하여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 세대를 멸하시기로 결정하셨고, 광야에서 40년을 돌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 사건을 다시 들추며 말합니다. “보라 너희가 너희 조상의 대를 이어 일어난 죄인의 무리로서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노를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 (민수기 32:14). 이 말은 단순한 책망이 아니라, ‘믿음 없는 선택은 결국 하나님의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여기서 '죄인의 무리'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 ‘하타임’인데, 이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고 반복적인 불순종을 말합니다. 모세는 이들의 선택이 과거의 불신을 반복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 행위라고 봤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며 자주 빠지는 함정이 바로 이것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기억하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그것은 단순한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회개와 순종이 부족한 결과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공동체성과 책임
민수기 32장의 핵심은 사실 땅의 경계가 아니라, 약속을 향한 ‘공동체의 책임성’입니다. 모세가 분노한 이유는 두 지파가 자신의 안위를 선택함으로써, 형제들의 싸움을 방관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다시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이 온 백성을 멸망시키리라” (민수기 32:15).
믿음은 개인의 결정이기도 하지만, 공동체 속에서의 순종이기도 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은 교회를 ‘한 몸’에 비유하며,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고린도전서 12:26). 마찬가지로, 두 지파의 이기적 결정은 공동체 전체의 영적 상태를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는 깊은 교훈을 얻게 됩니다. 나 하나쯤이야, 라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우리는 이 말씀에서 배워야 합니다. 교회는 혼자가 아닌, 함께 순종하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누군가 순종하지 않으면, 전체의 발걸음이 멈추게 됩니다.
땅이냐, 약속이냐: 신앙의 본질에 대한 질문
르우벤과 갓 자손이 선택한 길르앗 땅은 풍요롭고 안정적인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땅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이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에 좋았던 것을 택했고, 영적인 전쟁의 한가운데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후에 약속을 어기진 않았지만, 요단을 건너 싸우겠다는 조건으로 그 땅을 받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은 질문을 하나 던져야 합니다. ‘나는 지금 신앙의 중심에서 살고 있는가? 아니면, 경계선에서 머물며 유익을 따지고 있는가?’
요단 동편은 결국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람의 침입과 앗수르의 침략을 가장 먼저 겪는 지역이 됩니다. 즉, 말씀에서 벗어난 위치는 결국 안전해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먼저 흔들릴 수 있는 위치가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타협은 곧 무너짐의 씨앗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인간적 판단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반드시 그 결과를 겪게 됩니다.
결론 정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민수기 32장 1절에서 15절은 단순한 땅의 요청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본문입니다. 우리는 요단강 동편에서 멈추려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약속의 땅을 향해 함께 싸우며 전진하는 신앙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은 단순한 안락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전진하며 함께 순종할 때 누릴 수 있는 영광입니다. 내 유익을 넘어 공동체를 위한 책임, 말씀 앞에서의 분별,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전폭적인 순종이 오늘 우리의 자리에서 회복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가 요단강 동편에 안주하지 않게 하시고, 약속의 땅을 향해 믿음으로 전진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믿음의 전선을 따라 함께 나아갈 때, 주님은 그 땅을 우리에게 기억으로 주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