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장 강해

언약을 잊은 세대와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말씀 앞에 함께 서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삶의 무게와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음성을 사모하는 성도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은 사사기 2장입니다. 사사기 2장은 단순히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는 연결 고리가 아니라, 사사기 전체를 해석하는 신학적 열쇠와 같은 본문입니다. 왜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타락했는지, 왜 구원과 배신이 되풀이되는지를 하나님 편에서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 장은 인간의 신실하지 못함과 하나님의 변함없는 언약적 사랑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자리입니다. 오늘 설교를 통해 우리는 실패의 역사 속에서도 여전히 일하고 계신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고, 우리 신앙의 근본을 다시 점검하는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언약을 상기시키시는 하나님의 책망
사사기 2장은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삿 2:1) 올라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길갈은 할례와 언약 갱신이 있었던 장소이며, 보김은 ‘우는 자들’이라는 뜻을 가진 장소입니다. 이는 신학적으로 매우 상징적인 이동입니다. 언약의 자리에서 눈물의 자리로 옮겨오신 하나님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단순한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대표하는 언약의 전달자, 곧 말라크 야훼 מַלְאַךְ יְהוָה로 이해됩니다. 그분은 먼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상기시키십니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 내가 또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맺은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삿 2:1). 하나님은 먼저 자신의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문제의 출발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을 헐라”(삿 2:2)고 분명히 명령하셨으나, 이스라엘은 그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순종하다’라는 개념의 핵심은 히브리어 שָׁמַע(샤마)인데, 이는 듣고 행하는 전인적 반응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들었지만 행하지 않았고, 그것이 언약 파기의 본질이었습니다.
눈물의 회개와 변하지 않은 마음
하나님의 책망 앞에서 백성들은 소리를 높여 울며 그곳 이름을 보김이라 부르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립니다(삿 2:4-5). 겉으로 보면 이는 회개의 장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신학적으로 보면 이 회개는 감정적 반응에 머문 회개였습니다. 눈물은 있었지만 방향 전환은 없었습니다. 회개란 히브리어로 שׁוּב(슈브), 즉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울음은 삶의 방향을 바꾸는 회개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제사를 드렸지만, 우상을 제거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시는 분입니다. 이 장면은 외형적 경건과 내면적 불순종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신앙생활에서도 눈물의 기도와 뜨거운 예배가 반드시 삶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사기 2장은 그 위험성을 정면으로 드러냅니다.
한 세대의 신앙과 다음 세대의 단절
사사기 2장의 중심축은 세대 문제입니다. “여호와의 종 여호수아가 죽으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삿 2:8-10). 여기서 ‘알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יָדַע(야다)로,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관계적 인식을 뜻합니다. 다음 세대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신앙 전수의 실패를 의미합니다. 여호수아 세대는 전쟁을 경험했고,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했지만, 그것을 삶의 언어로 다음 세대에게 충분히 전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은 자동으로 유전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가르치고, 보여주고, 살아내야 전수됩니다. 사사기 시대의 비극은 외부 환경보다 내부 교육의 붕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상숭배와 언약 배반의 악순환
하나님을 알지 못한 세대는 곧바로 다른 신들을 따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삿 2:11). 바알은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가나안의 신으로, 인간의 욕망을 정당화해 주는 종교 체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보이지 않는 언약의 하나님보다, 즉각적인 유익을 주는 신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 선택이 아니라, 언약 배반, 곧 히브리어 בְּרִית(베리트)의 파기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 즉 אַף־יְהוָה(여호와의 콧김)가 임하고, 그들은 대적의 손에 넘겨집니다(삿 2:14).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징계는 멸망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그들이 탄식함으로 말미암아”(삿 2:18)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이 탄식은 신음이라는 뜻의 נְאָקָה(네아카)로, 깊은 고통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부르짖음입니다.
사사를 세우시는 긍휼의 하나님
이스라엘이 타락할 때마다 하나님은 사사를 세우십니다. 사사, 히브리어 שֹׁפֵט(쇼페트)는 단순한 재판관이 아니라, 구원자이자 영적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의 공로가 아니라, 자신의 긍휼, 즉 רַחֲמִים(라하밈)으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사사가 죽으면 백성은 다시 더 심하게 타락합니다(삿 2:19). 이는 인간 지도자 중심의 신앙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사사기 2장은 궁극적으로 참된 왕, 참된 구원자의 필요성을 드러냅니다. 이 반복 구조는 훗날 다윗 왕조를 넘어, 그리스도를 향한 구속사의 방향성을 암시합니다. 인간의 불성실 위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어떻게 역사를 끌고 가시는지를 보여주는 장이 바로 사사기 2장입니다.
마무리
사사기 2장은 실패의 기록이지만 동시에 은혜의 기록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을 잊었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세대는 바뀌었지만, 하나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떤 세대에 속해 있습니까. 눈물만 흘리는 신앙입니까, 아니면 삶으로 돌아서는 회개의 신앙입니까.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지식이 아니라 관계로 전하고 있습니까. 사사기 2장은 오늘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너는 여호와를 알고 있느냐.” 이 질문 앞에서 다시 언약의 자리로 돌아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침 기도문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사사기 2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비추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언약을 잊고 눈물로만 반응했던 이스라엘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봅니다. 주님, 감정에 머무는 회개가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는 참된 회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말로만 전하지 않고, 삶으로 증거하게 하시며, 우리의 신앙이 단절되지 않게 하옵소서.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신뢰하게 하시고, 참된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붙들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가 언약 위에 굳게 서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